지난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온 공보물을 열심히 보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몰라서 한참 고민 했습니다. 많은 공보물을 열심히 훑어 보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공보물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글들이 많았고, 내용도 복잡했습니다. 

각 당 이름은 사전에서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공보물을 이해하지 못해 어머니가 찍으라고 한 후보를 찍었습니다.

앞으로 발달장애인이 사는 집에는 선거공보물을 발달장애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과 글로 해석하고, 그림이나 사진도 많이 넣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조수진 씨

오는 5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울려펴졌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선거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공보물과 글씨·숫자로 빼곡한 투표용지, 공적조력인 부재 등으로 발달장애 당사자들은 참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에 발달장애 당사자들로 구성된 한국피플퍼스트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발달장애 당사자들로 구성된 한국피플퍼스트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발달장애 당사자들로 구성된 한국피플퍼스트는 29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피플퍼스트 문윤경 집행위원은 “태어나서 처음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설렜지만,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투표용지를 보니 말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가족이나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도장을 찍어야 했다.”고 전했다.

특히 글을 읽지 못하는 경우 숫자와 글씨로만 구성된 투표용지와 선거공보물은  ‘정보제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결국 발달장애인은 후보자 정보도 없이 가족이나 후견인 등 주변사람들의 ‘뜻’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게 된다.

이는 선거의 4대 원칙(보통, 평등, 비밀, 직접) 중 비밀선거에 위반되는 행위이다.

한국피플퍼스트 서울대회 김대범 준비위원장은 “내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리지 않는 것이 비밀선거의 원칙.”이라며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부모나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고 그들이 ‘찍으라는 대로’ 찍고 나온다. 이것이 무슨 비밀선거인가. 우리도 스스로 후보자 정보를 확인하고 의사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해 달라.”고 참정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에 한국피플퍼스트는 각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에  ▲알기 쉬운 공보물 제작 ▲그림 투표용지 제공 ▲공적조력인 배치 등을 요구했다.

한국피플퍼스트는 “투표용지에 당사자가 투표일 전까지 습득했던 다양한 방식의 판단기준을 최대한 활용해 기표할 수 있도록 사진·그림 등 관련 정보를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손 떨림 등으로 투표 용지 네모칸에 도장을 찍기가 어려운 경우 조력자가 기표소 안에 함께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피플퍼스트는 장애인거주시설 내 거소투표가 시행될 경우 투표행위와 절차 상의 문제점이 없는지 명확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장애인거주시설 내의 거소투표는 늘 의심의 대상이 됐다. 시설 내에서 어떻게 투표가 진행됐는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관인을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견하든지, 아니면 투표 절차 전체를 촬영 해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일정 기간 보관하게 해야 한다. 거소투표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선거관리위원회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에 대해 ‘공직 선거법 개정’ 없이는 요구안 수용이 어렵다고 전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후보자가 정식 선거공보물 외에 시각장애 선거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물을 작성할 수 있다. 아울러 투표용지의 칸 크기, 너비, 후보 기재 방법 등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법에 명시되지 않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선거 공보물, 그림 투표 용지 제공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공적 조력인 배치에 대해서는 현재 발달장애인이 투표할 경우 가족이나 지정된 후견인이 동행할 수 있도록 했고 이밖에 공적 조력인 배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제작, 그림 투표용지 제공 등 발달장애인 선거권 보장 관련 부분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투표소 안내문 발송 등 투표 과정의 편의만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 당사자들이 직접 만든 선거권 보장 요구안. 
▲ 당사자들이 직접 만든 선거권 보장 요구안.